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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1일(화) 말씀 묵상(열왕기하 19장 1~19절)
darling0691   2018-08-21 662

2018년 8월 21일(화) 말씀 묵상
본문 : 열왕기하 19장 1~19절

(1) 히스기야 왕도 이 말을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하여 자기의 옷을 찢고, 베옷을 두르고, 주님의 성전으로 들어갔다.
(2) 그는 엘리야김 궁내대신과 셉나 서기관과 원로 제사장들에게 베옷을 두르게 한 뒤에, 이 사람들을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에게 보냈다.
(3) 그들이 이사야에게 가서 히스기야 왕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오늘은 환난과 징계와 굴욕의 날입니다. 아이를 낳으려 하나, 낳을 힘이 없는 산모와도 같습니다.
(4) 주 예언자님의 하나님께서는, 랍사게가 한 말을 다 들으셨을 것입니다. 랍사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욕하려고, 그의 상전인 앗시리아 왕이 보낸 자입니다. 주 예언자님의 하나님께서 그가 하는 말을 들으셨으니, 그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예언자님께서는 여기에 남아 있는 우리들이 구원받도록 기도하여 주십시오."
(5)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이사야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니,
(6) 이사야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당신들의 왕에게 이렇게 전하십시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앗시리아 왕의 부하들이 나를 모욕하는 말을 네가 들었다고 하여, 그렇게 두려워하지 말아라.
(7) 내가 그에게 한 영을 내려 보내어, 그가 뜬소문을 듣고 자기의 나라로 돌아가게 할 것이며, 거기에서 칼에 맞아 죽게 할 것이다.'"
(8) 랍사게는 자기의 왕이 라기스를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후퇴하여, 립나를 치고 있는 앗시리아 왕과 합세하였다.
(9) 그때에 앗시리아 왕은 에티오피아의 디르하가 왕이 자기와 싸우려고 출전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히스기야에게 다시 사신들을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10) "너희는 유다의 히스기야 왕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네가 의지하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시리아 왕의 손에 넘어가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도, 너는 그 말에 속지 말아라.
(11) 너는 앗시리아의 왕들이 다른 모든 나라를 멸하려고 어떻게 하였는지를 잘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너만은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느냐?
(12) 나의 선왕들이 멸망시킨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그리고 들라살에 있는 에덴 족을 그 민족들의 신들이 구하여 낼 수 있었느냐?
(13) 하맛의 왕, 아르밧의 왕, 스발와임 도성의 왕, 그리고 헤나와 이와의 왕들이 모두 어디로 갔느냐?'"
(14) 히스기야는 사신들에게서 이 편지를 받아 읽었다. 그리고는 주님의 성전으로 올라가서, 주님 앞에 편지를 펴 놓은 뒤에,
(15) 주님께 기도하였다. "그룹들 위에 계시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님만이 이 세상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시는 오직 한 분뿐인 하나님이시며,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16) 주님,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십시오. 주님, 눈여겨보아 주십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을 전한 저 산헤립의 망언을 잊지 마십시오.
(17) 주님, 참으로 앗시리아의 왕들이 여러 나라와 그 땅을 마구 짓밟아 버렸습니다.
(18) 여러 민족이 믿는 신들을 모두 불에 던져 태웠습니다. 물론 그것들은 참 신이 아니라, 다만 나무와 돌로 만든 것이었기에, 앗시리아 왕들에게 멸망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마는,
(19) 주 우리의 하나님, 이제 그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셔서, 세상의 모든 나라가, 오직 주님만이 홀로 주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1. 본문 이해
- 랍사게의 전언을 들은 히스기야는 이번에는 두려움으로 인하여 항복하지 않았다. 대신 그 울분을 가슴에 품고, 자기 옷을 찢고 베옷을 입고 성전으로 들어갔다(1절). 거기서 신하들과 함께 엎드린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사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오늘의 처한 상황을 알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구한다(2~4절).
- 이에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6절).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해주실 것과 산헤립의 죽음에 관한 약속을 주셨다(7절).
- 당시 앗수르 왕 산헤립은 라기스에 있었는데, 산헤립이 라기스를 떠나 립나를 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8절). 립나는 라기스의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예루살렘에서 남서쪽 약 사십 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이다. 립나를 공격하는 산헤립을 돕기 위해 랍사게는 병력을 립나로 이동시킨다. 그때 산헤립이 에디오피아의 디라하가가 참전한다는 거짓 소문을 듣게 된다(9절). 구스 왕 디르하가는 구스의 왕일 뿐만 아니라 애굽의 25대 왕조에 속한 왕으로서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를 애굽 왕이라 하지 않고 구스 왕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구스 출신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구스 왕 디르하가가 유다를 돕기 위해 참전한다는 소식을 듣자 조급해진 산헤립은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위협한다(10~13절). 구스 왕과의 싸움에 집중하기 위해서 히스기야의 항복을 조기에 받아냄으로써 부담을 덜어내려는 속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히스기야는 이번에도 편지를 들고 성전으로 올라간다(14절). 그리고 주님께 간구한다(15절).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망언을 잊지 말고 벌하여 달라고 기도한다(16절). 앗수르의 만행을 고발하면서, 이번 기회에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세상 모든 나라가 알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한다(17~19절).

2. 나의 묵상과 적용
- 인생의 위기는 마치 비포장도로와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여기저기 울퉁불퉁해서 인생길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좀 빨리 달리고 싶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길이 고속도로같이 뻥 뚫리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인생의 고속도로가 축복인 것만은 아니어 보인다. 그래서 독일의 아우토반 같은 고속도로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굴곡을 두도록 설계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운전자가 졸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고속도로에서는 사고가 많이 난다. 그러나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에서는 사고가 별로 나지 않는다. 빨리 달릴 수도 없을뿐더러 힘주어 운전대를 잡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인생도 그러한 것 같다. 어려움과 괴로움과 고통의 돌들이 있음으로 인하여 긴장하고 깨어 운전하는 것 같다. 오랜 시간 평안이 계속되면 긴장이 풀리고 신앙에 게으름이 생기고 안일한 생각을 가지게 되어 하나님을 등한히 하고 실패하기 일쑤이다. 그러므로 인생길에서 위기라고 하는 비포장도로가 때로는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돌아보아도 그러했다. 비포장도로로 인하여 내가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있었고, 비포장도로로 인하여 나의 교만이 꺾였으며, 비포장도로로 인하여 내가 의지하던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의 비포장도로는 나에게 큰 유익을 주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도 내 인생길에 어떠한 비포장도로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나는 감사함으로 이 길을 갈 것이다. 하나님이 또 어떠한 유익으로 보답해 주실지를 기대하며 갈 것이다. 지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하나님이 계속해서 공급해 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위기는 기회이다. 세상의 법칙에서도 그러하겠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더욱 진리이다. 인생 길에 닥친 위기를 잘 다루기만 한다면 그것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충만한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게 된다. 히스기야가 그러했다. 산헤립의 일차 침공 때에는 두려움에 항복했던 그가 이제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인다. 더 위급한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낸다. 그리고 항복을 종용하는 편지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인위적인 방법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일체의 세상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랐다. 그 유일한 방법이 바로 기도였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었다. 기도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주는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기도는 철옹성처럼 굳어진 삶도 변화시키고, 기도는 엄청난 능력을 동반한다고 믿는다. 바울과 실라가 선교여행 중에 억울하게 모함을 받아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그때 그들이 거기서 한 것은 기도와 찬송이었다. 그때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면서 착고가 다 풀어지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능력이다. 헤롯이 교회를 핍박할 때였다. 베드로가 잡혀서 옥에 갇혔다. 한밤중에 홀연히 천사가 나타나 그의 옆구리를 쳐서 일으켜 세웠다. 그랬더니 군사들과 함께 묶여 있던 쇠사슬이 다 풀어졌고, 천사를 따라 나오는데 몇 겹으로 되어 있는 쇠문들조차 저절로 열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감옥을 탈출할 수 있었다. 보초를 서던 어떠한 병사들도 알아채지 못했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케 했는가? 바로 교회와 온 성도들이 배후에서 간절히 기도한 결과였다. 그렇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끌어내는 통로이다. 그래서 기도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최선의 방책이다. 그래서 기도는 특권인 셈이다. 이 기도의 특권을 나나 우리 성도들이 누리지 못하고 사장 시켜 버리지 않기를 원한다. 히스기야는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에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앗수르왕 산헤립의 편지를 들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갔다. 그는 기도라고 하는 무기를 적극 활용했다. 그리고 이것이 히스기야로 하여금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 되게 만들었고,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게 만들었다. 기도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매일, 우리 성도들이 기도의 골방을 만들어 일정한 시간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구한다. 기도라고 하는 무기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기도의 대가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구한다.
- 히스기야가 국가적 재난을 앞에 두고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서 기도할 때, 혼자만 기도한 것이 아니었다. 궁내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 그리고 원로 제사장들과 함께 기도했다. 히스기야 한 사람만 기도한 것이 아니라 신하들이 모두 합세하여 기도한 것이다. 사람들은 지도자를 본받는다. 그런 면에서 이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히스기야의 모습을 본 백성들 역시 하나님 앞에 엎드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히스기야를 비롯한 온 예루살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엎드린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대대적인 기도회가 열렸을 것이다. 개인이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합심 기도는 더더욱 중요하다. 십시일반이라고 했다. 한 개인이 기도하는 것보다 합심으로 하는 기도가 훨씬 큰 힘을 발휘한다. 두세 사람이 합심하여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막강한 권세와 능력이 있다. 합심 기도를 통하여 묶을 것은 묶고 풀 것은 풀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합심 기도는 공동체의 마음을 주 안에서 하나로 묶어준다. 마치 교향악단이 음악적 하모니를 이루는 것처럼 합심 기도는 교회의 모든 지체가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게 만든다. 그러므로 합심 기도가 살아있는 공동체는 잘 깨어지지 않고 분란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인간적으로 친해지고 좋은 관계를 맺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건 깨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기도로 맺어지는 관계는 쉽사리 깨어지지 않는 법이다. 나아가 합심 기도는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신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 이것이 합심 기도의 위력이라 믿는다. 우리 성도들이 평일에는 개인별로 기도의 골방을 만들어 기도하되, 주말에는 교회에 나와 새벽에 함께 합심으로 기도하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하여 합심 기도의 축복들을 모두가 듬뿍 누리는 공동체가 되기를 위하여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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