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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7:37-53 스데반의 설교(3): 이스라엘의 반역
이종석   2018-01-16 1909

행7:37-53 스데반의 설교(3): 이스라엘의 반역
1. 교회는 말씀이 삶을 이끌어야 합니다(37-38)
스데반은 신18:15에 언급된 말씀이 모세임을 말씀하면서 광야 교회에서 살아 있는 말씀을 하나님께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임을 말씀합니다. 광야 교회란 광야에 모인 회중으로서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가기 위하여 광야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나안에 들어가 복을 누리기 위하여 훈련시킨 장소로서 하나님은 5가지 훈련을 하시고 말씀을 주신 후 말씀을 누리도록 훈련하신 광야 40년을 말합니다.
우리의 삶도 천국의 모형인 교회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가기 전에 훈련 받고 복을 누리는 삶이 무엇인지를 말씀을 통하여 훈련받고 영화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것 같이, 지금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말씀이 살아 역사해야 하고 말씀이 삶을 이끌어야 합니다.
삶은 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화되어야 합니다. 훈련 받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군인이 될 수 없습니다. 특히 영적인 전쟁에서 이겨야 유혹을 이길 수 있기에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말씀이 삶을 지배하도록 경건의 연습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아 생명의 역사가 있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2. 옛것을 버립시다(39-40)
하나님은 약속으로 인하여 크신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켰지만 그들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말씀을 받기 위해서 산에 올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은 애굽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이는 노예근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출애굽시킨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노예 생활이 지금 잠시 당하는 광야의 생활보다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지금의 삶은, 삶의 목표가 아니고 과정에 불과합니다. 영원을 위해서 살아야 영적인 존재로서 잠깐 지나가는 나그네의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영원을 위해서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말씀을 통하여 비전을 바라보는 삶이 아니라 현실에 나타난 현상에 집착을 하다보면 우리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빌3:13-14에서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하는 것처럼 옛 것은 단호히 버리고 앞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하기에 뒤돌아보지 말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도록 합시다.
3. 우상을 버립시다(41-43)
이스라엘 백성은, 아론으로 하여금 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니, 하나님께서 버려두십니다. 그래서 예배도 받지 않습니다. 무관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율법의 규정에 따라 형식상 제물을 드렸고 예배를 드렸지만 하나님께서 받으신 제사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의 관영함은 결국 그들의 죄악 가운데 버림을 받는 결과를 초래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아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상실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맘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시는 것이 좋은 것 같지만, 이로 인하여 감격이 사라지고 흐르는 눈물이 없고 메마른 감정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이 지옥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여정의 광야에서만이 하나님을 반역한 것이 아니라, 이미 출애급의 광야 생활에서 부터 시작하여 바벨론 포로시기까지 우상숭배의 역사는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오늘 지금 우리에게 있어 우상은 무엇입니까? 재물의 우상인 맘몬, 명예의 우상, 세상 정욕과 자랑의 우상들로 우리의 신앙을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형식적인 예배, 형식적인 종교인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마음은 세상에 집중된 가운데 하나님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분별하고, 결단하여, 단호히 우상을 버리도록 합시다.
4. 주님과 동행합시다(44-50)
스데반은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여 만들도록 한 성막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하나님이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고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야기하던 스데반은, 이제 여기에만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증거의 장막은 하나님께서 직접 임재 하여 택한 백성과 교제를 나누셨기에 회막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이 성막을 중심으로 이동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 법궤가 앞서서 갔습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이 법궤가 앞서 갔습니다. 다윗이 왕국을 세울 때까지 법궤는 항상 앞서 갔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성전 짓기를 바랐지만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에게는 허락이 되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항상 성막 중심의 신앙이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성막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이제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심을 언급합니다. 곧 영으로 지극히 높으신 곳에 계심을 말씀합니다. 이는 보이는 성전을 냉소적으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 성전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건물적 의미가 아니라 영적 의미로 바뀌었음을 말합니다. 곧 육신이 거하는 곳 보이는 성전이 영이 거하는 곳 마음의 성전으로 바뀌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만나시기 위하여 처소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 계시면서 간섭하시고 인도하시고 동행하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무소 부재하신 분이시기에 반드시 성전 안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계시지 않은 곳이 없이 어느 곳에든지 계십니다. 특히 우리 마음에 계십니다.
우리의 삶은 성막 중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삶의 현장에서 임재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살을 살아야 합니다. 임마누엘 되신 하나님은 재창조를 통하여 우리의 삶을 주관하십니다.
임재의식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5. 말씀을 삶에 적용합시다(51-53)
스데반은 지금까지 청중들의 마음을 자극시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부터, 금송아지를 숭배하며 배교했던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 지금 성령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치 아니하는 완악한 마음을 갖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도 동일하게 내려지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함으로써 말씀을 지키지 아니했음을 말씀합니다.
말씀은 사상이 아니기에 삶에 적용하여 변화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말씀을 듣는 자만이 아니라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화가는 그림으로 말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을 듣는 자만이 아니라 말씀을 삶에 적용하여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룩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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