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게시판-장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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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내게, 내가 네게]
이병철   2018-08-22 614

(열왕기하 19:20-37, 네가 내게, 내가 네게)

히스기야의 기도는 즉시 응답되었다.
기도한 자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게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대부분의 응답에 대한 간증이다.
이와 달리 히스기야는 기도한 뒤에 그의 생각에 떠오른 것을 응답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3자가 그의 기도에 대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히스기야 자신의 주관적인 느낌이 아닌 분명히 하나님의 응답이다.
어제 본문에서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의 위협적인 편지를 받고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그 자리에 이사야 선지자가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가 들려주는 말씀은
이사야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히스기야가 기도한 내용을 이사야가 들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들으셨으며,
그 기도에 대한 응답도 이사야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말씀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단어가 있다.
“내”(나)와 “네”(너)다.
이 두 단어는 대상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른 뜻으로 쓰인다.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하시는 응답이므로
당연히 “내”(나)는 하나님, “네”는 히스기야일 것인데,
하나님은 앗수르 왕에게도 말씀하시므로 이때는 “네”가 앗수르의 산헤립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서 앗수르의 말을 인용하시기도 하셔서 “내”가 앗수르 왕이 되기도 한다.

“네(히스기야)가 ··· 내(하나님)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이것이 첫 번째 경우다.
“내(하나님)가 ··· 너(산헤립)로 견고한 성들을 멸하여 무너진 돌무더기가 되게 함이니라”,
이것은 두 번째 경우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의 말을 인용한 내용으로,
“내(산헤립)가 많은 병거를 거느리고 여러 산꼭대기에 올라가며”

나와 너가 각각 누구를 의미하는가보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산헤립이 하는 말이 하나님에 의해 전적으로 반박되고 부정된다는 사실이다.
앗수르가 예루살렘의 유다 백성을 멸시하고 비웃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너를 웃었”다고 반박하셨다.
무슨 뜻인가?
랍사게의 말과 산헤립의 편지는 유다와 여호와 하나님을 비방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에 의해 전혀 아무 비방을 받지 않으신 것이다!
하나님을 비방하는 아무리 사악한 말들이 난무해도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거룩하심이 손상을 입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분명 유다와 히스기야 왕은 비방을 당했고,
그 위협으로 인해 기가 죽고 두려워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유다(하나님의 “처녀 딸 시온”)가 앗수르를 멸시하고 비웃었다고 말씀하신다.
아, 그렇다!
성도가 두려운 마음을 하나님께 탄식으로 아뢸 때
하나님은 그것을 박해자에게 비방과 조롱으로 돌려주신다.
그러므로 성도가 세상을 멸시하고 비웃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성도는 비방과 조롱을 듣고 위축되고 괴로워서 하나님께 탄원할 뿐이다.
그것은 나의 입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입을 통해서 그들에 대한 비방이 될 것이다.
아니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될 것이다.

앗수르의 왕은 자신이(“내가”) 어마어마한 군사력으로
세계를 휩쓸고 다닐 것으로(“나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강들을 말렸도다”) 자랑하고 있지만,
이 세상은 누가 지은 것이며 앗수르 왕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주관하신다!
“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옛날부터 정한 바라”
그리고 앗수르와 그 왕은 하나님의 분노를 사서
“내(하나님)가 갈고리를 네(산헤립) 코에 꿰고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일이 그 밤에 이루어진다!
앗수르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이 “다 송장이 되었”다!
산헤립은 니느웨로 도망가서 신전에 있다가 반역으로 죽임을 당한다.

산헤립은 “내”와 “네”를 자기 마음대로 설정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정반대로 행하셨다.
산헤립은 자기가 신인 것처럼 세상을 지배하고 유다를 비웃는 줄 알았지만,
하나님이 창조주요 앗수르를 지배하고 유다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신다.
아, 나와 너를, “내”와 “네”를 잘 구분하는 것이 바른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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